“아직 덜 컸어요.”
27살. 남자가 농담이라면 모를까, 진담으로 털어놓기는 창피한 말이다.
더군다나, 타인이 널 덜 컸다는 식으로 말하며 기분 좋아할 사람이 몇 이나 될까?
고백하자면, 아직 덜 컸구나 싶을 때가 있다.
바로 눈물.
눈물이 없는 나는, 우는 사람을 보고, 특히 술 마실 때 우는 사람을 보면 굉장히 무시하는 편이다. 눈물은 결코 타인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. 그래서 잘 울지 않는다. 기억나는 울음은, 정말 열심히 했음에도 패배하여 하늘을 원망했던 1년 전 전국대회 밖에 없다.
그런데, 눈물 없음이, 그러니까 큰 실패를 못해봤음이 여전히 ‘어른’이 되지 못하게 발목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.
특히 최근 두 번 보았던 통곡의 풍경이 그랬다. 처음은 부산 금정산. 가족, 고모 식구와 야간 등산 중 갈라졌다 합쳐지는 길에서 홀로 오른쪽을 택했었다. 꽤 걷다보니 가족의 이야기 소리는 멀어지고, 숲에 가렸다. 그때 들렸던 소리. 처음에는 라디오 소리인 줄 알았다. 조금 더 걸어갔을까, 어느 남자의 통곡 소리였다. 어두운 밤, 산 속, 그는 정말 서럽게도 울었다. 깜짝 놀랐던 나는 재빠른 걸음으로 가족에게로 뛰어갔고, 멀리서 돌을 끌어안고 우는 그의 형태만 보았다.
두 번째는 지난 월요일 잠수대교. 친구와 잠수대교 넘어 여의도 가는 길. 무슨 소리가 난다 싶어 아래를 보니, 어느 여자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. 놀라서 친구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곤 급히 페달을 밟고 그 자리를 떴다. 무슨 일이었을까?
그러니까, 그들은 무엇이 서러워 그리 울었을까? 그리고 나는 왜 통곡 수준으로 서러운 일이 없었을까? 복 받아서? 아니 되려 두렵다. 아직 오지 않아서 그렇지. 분명 내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. 꺼이꺼이 울어 제치고 나서야 살 힘을 얻는 그날이.
신경숙의 말을 빌리자면, 부디 내게도 그 슬픔에 버금가는 힘이 있기를.